혼자서 다하는 시대, 우린 여럿이 합니다

요즘은 혼자서도 잘만 합니다.
아이폰 하나면 촬영 끝,
프리미어로 컷 편집, 자막 넣고 음악 깔고 썸네일까지.
심지어 AI가 내 목소리로 나레이션도 해주고, 자동 자막도 만들어주죠.
바야흐로 1인 크리에이터 전성시대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아직도 사람 여럿이 붙습니다. 귀찮게요.
기획자가 방향을 잡고, PD가 예산과 일정을 조율하고,
조연출이 현장을 세팅하고, 감독이 콘티를 짜고,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편집자가 컷을 나누고,
컬러리스트가 색을 입히고, 사운드 디자이너가 숨결을 얹습니다.
컷 하나에 회의 세 번, 수정 다섯 번, 그래도 또 확인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묻습니다.
“아니, 그거 한 명이 하면 되지 않아요?”
맞습니다. 할 수는 있죠. 요즘은 툴도 좋아졌고, 사람도 멀티가 되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만든 영상과, 여럿이 머리 맞대고 만든 영상은 ‘깊이’가 다릅니다.
단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 서로 다른 재주꾼들이 붙습니다.
감독은 시선의 방향을, 촬영감독은 빛의 설계를, 컬러리스트는 정서의 온도를 고민하죠.
편집자는 시간의 리듬을 짓고, 사운드 디자이너는 그 사이의 감정을 설계합니다.
좋은 영상은 그냥 찍고 자르는 것이 아니라, ‘특화된 재주’ 를 조율해 만드는 일입니다.
요즘같이 빠르고 즉각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어렵게 천천히, 정성스럽게 만듭니다.
서로의 역할이 촘촘히 얽히고, 연결되며 하나의 톤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촬영장에서 의견 다르고, 편집 중에 다시 재촬영 이야기가 나오고, 컬러와 사운드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과정이 결국 영상의 밀도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분업은 일 나누기가 아닙니다.
각자의 악기로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완성해가는 과정입니다.
혼자 빠르게 가는 길도 있지만,
우리는 여럿이 멀리 가는 길을 택합니다
사비필름은 그렇게 작업합니다.
혼자 할 수 있음에도, 여럿이 함께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그게 더 잘 나오니까요.
혼자서 다하는 시대, 우린 여럿이 합니다 | 글 : 허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