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제자리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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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제자리 상실의 시대 | 🖊️  : 허재석

“빨래는 빨래통에 넣어라, 다 먹은 그릇은 싱크대에 넣어라, 손톱깎이 썼으면 제자리에 둬라….”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말들을 들어봤을 것이다.

어머니가 물건을 제자리에 두라고 했던 건
그녀의 물리적인 가사 노동을 나누거나 정리 정돈을 교육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물이 제자리에 있는 것은 그저 보기 좋아서만은 아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그것 고유의 존재 이유를 온전히 드러낸다.
즉,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건 단순히 갖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있어야 할 자리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만약 빨래가 신발장 안에 있고, 다 먹은 그릇이 가방 속에 들어 있다면
그 물건은 존재의 의미를 잠시 상실한 셈이다.
물론, 일부러 그릇을 가져갈 의도로 가방에 넣었다면 괜찮다.
당연히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겠지만….

‘제자리’는 고정되어 있을 수도 있고, 하나가 아닐 수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커피잔을 생각해 본다면,

  • 찬장에 놓여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커피잔
  • 유리 장식장에 전시된 채 미관을 담당하는 커피잔
  • 커피가 담긴 채 누군가의 손에 들린 커피잔
  • 다 마신 후 싱크대에 놓인 커피잔

이 각각의 모습은 커피잔이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자리’들이며,
그 변화 속에서 커피잔은 자기만의 역할과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만약 커피잔이 박스에 쌓인 채 창고에 있다면?
나의 기준으로 그것은 ‘제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쓰지도 않고, 언제일지 모를 시점을 위해 창고에 있는 커피잔은
소유의 목적도, 존재의 의미도 잃어버린 쓸모없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물성이 뚜렷할 때는 그 제자리도 비교적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며 물성이 흐려지면, 제자리도 함께 흐려진다.
‘사진’이 그렇다.

사진은 원래 필름에 찍힌 후 인화지 위에 남는 것이었다.
액자 속 벽에 걸리고, 앨범 속에 정리되거나,
지갑 안에 들어가기도 하며, 누군가와 복제해 기억을 나누는 물건이었다.
사진은 그 자체로 ‘전시되거나 꺼내어 봄’이라는 노출의 목적을 가졌고,
그래서 늘 ‘어딘가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화는 사진의 물성을 바꿔놓았다.

우리 세대는 디지털 데이터의 제자리를 처음으로 고민하게 된 세대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언제나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지금의 사진은 외장하드와 PC, 스마트폰, 클라우드에 흩어져 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찾을 이유도 없고, 결국 데이터는 쌓이지만 꺼내어지지도, 노출되지도 않는다.
사진의 본래 목적은 잊은 채, 사람들은 더 좋은 카메라와 더 크고 빠른 저장 장치만을 찾아간다.

운 좋게도 나는 필름사진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였다.
그래서 사진이 머물렀던 자연스러운 제자리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나 역시 디지털 사진을 찍어 왔고,
지금은 그 흔적이 너무 많아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앞으로의 세대는 아마 필름카메라를 거의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의 제자리는 이제 어디여야 할까?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사진을 찍고 있지만,
과연 사진 한 장을 소유할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비슷한 선상에서 어느 영화감독은 극장의 위기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는 극장에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 자체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이유다.”
이는 영화의 제자리가 어디인지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노력과 진심을 쏟아내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다.

디지털이 만들어 준 풍족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빠르게 많은 것들의 제자리를 잃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