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사회 속 호칭사회

호명사회 속 호칭사회

호명사회 속 호칭사회 | 🖊️  : 허재석

송길영의 [호명사회] 라는 책이 있다.
이제는 직책이나 소속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핵개인의 시대란다.
하지만 아직 촬영 현장은  “호명”보다는 “호칭”이 정체성을 드러낸다.
영상 업계에서 자주 들리는 직책 호칭들에 숨어 있는 뉘앙스를 가볍게 풀어보려 한다.

“감독님”

영상 업계에서 각 파트의 장들에게 붙는 대표적 호칭. 공연, 연극,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쓰인다.
일반 회사에서는 “감독”보다는 “디렉터”라는 영어 표현을 선호하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디렉터”라고 하면 살짝 더 세련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조감독님 (조연출)”

감독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앞에 붙은 ‘조(助)’ 때문에 왠지 ‘보조’처럼 들린다.
실제 역할과 무게감에 비해, 단어 자체의 권위가 가장 약해 보이는 직책명이 아닐까 싶다.

“PD님”

대중에게는 가장 익숙한 호칭. 하지만 방송 PD와 광고 PD는 역할이 크게 다르다.
EPD, Line PD, Local PD 등 다양한 변형 호칭이 혼재하기도 하고 워낙 하는 일이 다양하다 보니 가끔은 업계 사람들끼리도 뭐 하는 사람인지 혼란에 빠지곤 한다.

“실장님”

사진·디자인 업계에서 자주 보이는 호칭.
영상 쪽에서는 헤어·메이크업, 푸드, 의상 등 주로 스타일 관련 파트에서 많이 쓰인다.
묘하게도 여성 스태프가 많은 분야일수록 ‘실장님’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 인상이 있다.

“기사님”

과거에는 촬영감독이나 조명감독 등 기술 파트 장을 이렇게 불렀다.
요즘도 일부 선배들에게는 여전히 통하는 말이고, 개인적으로는 지미집 오퍼레이터에게 무심코 “기사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촬감님”

이상하게도 다른 감독 호칭은 잘 줄이지 않는데, **‘촬감님’**만큼은 예외적으로 줄여 부른다.
“연감”이나 “조감”은 어딘가 어색한데, “촬감”은 발음이 잘 붙고 리듬감도 있어서 그런 듯하다.

“촬영팀 형님 / 조명팀 형님”

조수 파트를 부르는 방식. “형”이라는 말은 아마 군대 문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처음부터 쓰기보다는 몇 시간 함께 일하다 얼굴이 트이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실제로 나이가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냥 “형”이라고 불러야 서로 간에 부담이 줄어드는 묘한 호칭.

“연출부”

일일 연출보조 인원을 통칭하는 말.
그런데 다른 호칭과 달리 존중의 결여가 살짝 느껴진다.
‘부’라는 집합적 호명으로 뭉뚱그려 부르다 보니, 개인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느낌.
언젠가는 이 자리에 맞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막내”

직책이나 역할과 상관없이, 현장에서 가장 어린 스태프에게 자동으로 붙는 호칭.
업무와는 무관하게 ‘막내’라는 이름이 정체성을 대신해 버린다.
그래서 “막내”는 촬영팀일 수도, 연출부일 수도 있다.
겉보기엔 귀여운 호칭 같지만, 안 귀여운 막내들도 종종 있다는 게 함정.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호칭을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입맛대로 다양한 호칭을 사용한다.
“선생님, 여기요, 저기요, 잠깐만요, 사장님, 아저씨…”

촬영 현장도 그렇고 아무리 불리는 호칭이 많다지만,
끝내 크레딧을 완성 시키는건 유일한 우리의 이름 세글자가 아닐까.